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전공 원우회 — 이현성 교수 인터뷰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전공 원우회는 2026년 8월 25일 이현성 교수를 만나 공공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원우회는 공공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바라보는 공공디자인의 의미와 현재, 앞으로의 가능성을 전공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이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약 40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이현성 교수는 공공디자인을 '필요한 디자인'이라는 말로 풀어냈고, 과정을 함께 나누는 거버넌스, 디자인 효과의 검증,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자세, 그리고 공공디자인을 공부하는 원우들에게 건네는 당부까지 이야기했습니다.
필요한 디자인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공공디자인은 무엇인가요? 다른 디자인 분야와 비교했을 때 공공디자인만이 가진 매력이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동안 디자인은 산업 시대의 필요에 맞춰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공디자인이 가진 가장 큰 의미는, 산업 시대에 꼭 필요했던 디자인의 영역에서 한 걸음 나아가 오히려 거꾸로,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디세뇨(disegno)라는 개념이 담고 있던 디자인 본래의 가치를 다시 찾아오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리듬을 타듯 순환해서 돌아오는 거죠. 저는 이 점을 아주 가치 있게 봅니다.
자동차 디자인이나 제품 디자인은 자동차를 만들고 제품을 만든다는 목적이 분명하고, 조형성에 초점이 있잖아요. 공공디자인은 그런 기존 디자인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공공 영역의 가치를 높이거나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관점의 디자인이에요. 그런 디자인이 우리나라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체계화되고 법제화되었다는 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찰스 임스가 문제가 변하면 디자인도 변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대정신이 변하면 디자인의 역할도 계속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전략에 관한 것이냐, 형태에 관한 것이냐, 과정에 관한 것이냐, 솔루션에 관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요. 지금의 시대정신을 보면, 기능적이고 예쁜 디자인, 심리적 만족을 주는 디자인의 영역은 이미 상당한 완성도에 이르렀습니다. 예전에는 디자인이 잘 팔려야 했다면, 이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디자인인가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여성 친화 디자인처럼 요즘 주목받는 디자인의 공통점은 조형성이나 기능성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는 해결책을 디자인이 전략적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마 저를 포함해 여러분이 가장 전문성 있게 활동할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한국 디자인 산업의 문화는, 오브제를 예쁘게 만들어 기호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올리는 쪽보다 아주 다양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얼마나 찾아내느냐로 옮겨 갈 겁니다. 유니버설 디자인도 여기에 포함되고, 정서를 돌보는 멘탈케어 디자인처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있겠죠.
제가 생각하는 공공디자인은 우리가 일부러 바꾼다기보다, 시대정신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변해 가는 디자인의 변화 과정 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우연히 나타났을지라도, 우리 생태계와 역량, 가치,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잘 정립해야 해요. 그건 우리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시장에도 내놓고, 연구로도 내놓고, 실무로도 펼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디자인에는 그런 유연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공공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실제적인 효과를 중요하게 다루고 계신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잘된 공공디자인'은 어떤 모습인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필요한 디자인'입니다. 조금 풀어서 말씀드릴게요. 기존의 디자인은 심리적, 미적 관점에서 선택되었고, 또 표준화된 관점, 이른바 모듈러 시스템에 따라 정답이 있는 합리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문의 크기는 900에 1,800이어야 하고, 벽돌은 300 단위로 나뉘어야 한다는 식이죠. 그런 디자인 덕분에 우리는 무언가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값싸게 만들 수 있었고, 책상이나 의자를 싸게 쓰고 자동차도 탈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게 기능적이고 미적인 디자인이 제 역할을 해냈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좋다'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저는 좋은 디자인이라는 표현보다 필요한 디자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전의 디자인은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기보다, 양산 과정에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많이 팔리고, 규격화되어 관리가 쉬운가를 기준으로 삼았거든요.
여기 있는 컵 하나를 만든다고 해 봐요. 우리는 이 컵이 얼마나 튼튼하게 오래 버티는지, 위아래로 쌓을 수 있는지, 원가를 500원 아래로 맞출 수 있는지, 얼마나 예쁜지에 온통 관심을 둡니다. 그런데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이 컵을 쏟지 않고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용물이 뜨거운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운전자가 눈을 떼지 않고 편안하게 입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손이 작은 사람과 큰 사람, 입을 다쳐서 잘 쓰지 못하는 사람, 얼굴이 작은 사람과 큰 사람에게 이 컵이 어떻게 필요하게 쓰일지도 마찬가지고요.
이전의 디자인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브제를 너무 예쁘고 기능적으로 잘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제 그걸 잘하는 사람은 아주 많아요. 그러니 잘된 공공디자인이라면 사물을 중심에 두지 말고 사람을 중심에 놓아 보자는 겁니다. 책상 하나를 놓더라도, 75cm 높이는 모듈러 기준인 키 183cm의 사람에게는 딱 맞지만 키 155cm인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누군가는 허리를 삐끗할 수도 있어요.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요즘 사람에게는 상판이 평평해서 빛 반사가 생기니 좋지 않고요.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이걸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엇을 디자인할 때 컵이라면 컵이 아니라 '마시는 일'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자동차라면 자동차가 아니라 '움직이는 일'을 어떻게 디자인할지를 따져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실제로 클라이언트에게 새롭게 제안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줄여서, 얼마나 필요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그런 디자인을 선택하게 되고, 공공디자인은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공원이 얼마나 예쁜가, 벤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그 영역은 이미 포화된 시장이고 아주 잘하는 전문가가 많아요. 그것만 보면 공공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이 뭐가 다르냐는 혼란이 생기죠. 저는 필요의 가치를 결국 인본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에서 해 온 공공기관 연구나 논문을 자세히 보면 다 이런 관점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공공디자인이란, 필요한 디자인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포괄적으로 관찰하고 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AI가 발전하면 예쁜 디자인은 정말 많이 나올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이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디자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그걸로 설득하고, 그렇게 우리나라 디자인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저도 벤치를 만드는 일도 하지만, 사회 갈등을 예방하는 디자인, 흡연자의 정서를 바꿔 주는 디자인, 아이들이 싸우지 않게 해 주는 디자인처럼 사람의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디자인 기술을 응용하는 일이 꼭 필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원우 여러분도 지금 하고 계신 영역에서 이미 뛰어난 능력을 갖고 계시잖아요. 거기에 필요한 디자인이라는 관점만 더해 함께 연구하면 응용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같이 해 보실래요? 물론 돈도 됩니다.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봉사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과정을 함께 나누는 디자인
공공디자인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시민, 행정, 전문가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교에 처음 와서 맡을 과목을 고를 기회가 생겼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찜한 과목 가운데 하나가 거버넌스였어요. 어렵잖아요. 거버넌스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에 관한, 행정학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디자인이 꼭 알아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팀 브라운의 『디자인에 집중하라』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만족은 과정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쉽게 풀어 볼게요. 여기 두 분이 계신다고 해 봅시다. 제가 뒤에 들어가서 뚝딱뚝딱 음식 두 접시를 만들어 내왔어요. 그게 맛있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여기서 같이 파를 다듬어 보는 거예요. 파는 초록 부분보다 흰 부분에 비타민이 많아서 이 부분을 먹어야 한다, 상추는 초록 부분이 더 좋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썰고 시나리오를 같이 이해하면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해 봐요. 뒤에서 혼자 만든 음식은 자극적이고 예쁘고 따끈따끈할 수 있지만, 먹는 사람은 그 과정을 모르니 먹어 보고 맛없으면 "안 먹을래" 하고 맙니다. 그런데 함께 만든 음식은, 최소한 먹고 나서 "에이, 이게 뭐야" 하지는 않아요. 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이걸 디자인으로 옮겨 보면, 아주 가까운 예로 우리 학교 정문에 작은 포켓 파크를 만든다고 해 봅시다. 어느 날 갑자기 칸막이를 치고 공사를 하더니 짠 하고 완성됐어요. 아주 잘 지었습니다. 반대로 공공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홍익대 학생들과 6개월 동안 함께 "우리 정문 공원 만듭니다" 하면서 같이 흙도 파고, 이게 맞냐 저게 맞냐 하면서 만들었다고 해 봐요. 당연히 뒤의 경우가 만족도가 높습니다. 팀 브라운이 서비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그런데 흔히 참여라고 하면 스티커 붙이고 끝내곤 하잖아요.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고, 거버넌스 과목은 바로 그런 것을 연구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디자인은 효용과 기능을 다뤄야 하니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공공디자인은 반드시 과정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는 눈으로 보고 기호에 따라 고르는 디자인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고, 그 필요를 알리려면 과정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결과만 놓고 "이건 사실 이렇고요, 저렇고요" 하면 약장수처럼 보이거든요. 공공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참여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로 형식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참여가 필요하다고 하면 포스트잇을 준비하고, 그 자리의 이벤트가 멋있어 보이도록 애를 씁니다. 솔직히 그것도 좋아요. 그런데 끝나고 나면 어떤 줄 아세요? 데이터는 남았고, 사진도 예쁘게 나왔는데,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서 하는 내 작업과는 연결이 안 됩니다. 본질 없는 형식인 거죠.
그래서 중요한 건 공공디자이너가 이 과정을 디자인에 개입시킬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컴퓨터 앞에서 혼자 마우스로, AI로 작업해서 내 눈에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면 우리끼리 만족하면서 "대단하지 않아?" 하고 내놓잖아요. 그와 함께,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디자인을 느낄 수 있도록 어느 단계에서, 어떤 깊이로, 어떤 방법으로 함께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게 거버넌스의 관점이에요.
그래서 원우 여러분이 그런 관점 없이 학교에 오셨더라도, 협력하고 거버넌스를 이끄는 기술을 익히셨으면 합니다. 디자이너를 많이 가르쳐 보면 처음에는 거버넌스를 어려워해요. 저도 디자이너지만, 우리 단점 가운데 하나가 선을 너무 많이 긋는다는 겁니다. 거버넌스나 ESG 이야기가 나오면 "이건 내 일이 아니야" 하죠. 그런데 그들의 참여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영역에 있으려면 인문학자도, 행정학자도 되어 봐야 합니다. 우리 기술만으로 풀려고 하면 정말 쉽지 않아요.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나 여기 있으니 이리 오세요"가 아니라, 내가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건 결국 과정의 디자인을 위한 것입니다.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과정을 투명하게 함께하면서 감동하게 하는 편이 더 빠르고 쉽더라고요. 그러면 내 디자인의 가치도 올라가고, 공공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영역도 생깁니다. 우리 커리큘럼에 이노베이션도 있고 이것저것 복잡해 보이는 것도 그래서예요. 대학원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까, 짧은 시간 안에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맛을 보고 살짝 감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각자 연구하는 거죠. 우리 연구센터는 졸업했든, 지도교수가 누구든 상관없이 이런 것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김지영 교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곳입니다. 그 취지를 아시고 졸업한 뒤에도 계속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공공재에 대한 관심
최근 기후변화, 고령화, 지역소멸,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공디자인이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를 하나 꼽으신다면 무엇일까요?
이해를 돕느라 비유를 좀 과하게 하는 편인데요. 만약 홍익대학교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교수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아마 원우마다 답이 다 다를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제가 감히 어떻게 정하겠어요. 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저는 이 질문 속 문장이 오히려 답 같았습니다. '공공디자인이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이라는 부분이요. 무엇에 관심을 갖느냐보다, 공공재에 관심을 가질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사회에는 젠더 이슈도 있고, 기후 문제도 있고, 세대 간 갈등 구조도 많습니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이종혁 교수님이 하고 있는 연구인데, 전자담배와 궐련 담배 사이에도 분명히 갈등이 있어요. 예전에는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궐련과 전자담배 사이의 문제가 생긴 거죠. 도로 위에서도 개인형 이동장치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갈등이 상당합니다. 사회, 경제, 문화 어디에나 이런 문제가 있어요. 디자인 영역을 벗어나 헷갈린다면, 사회학 개론서나 지금 사회학에서 연구하는 논문의 주제를 보세요. 공공디자인이 다룰 주제가 정말 많습니다.
젠더부터 사람의 정서, 심지어 ADHD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공공 영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있습니다. 요즘 공황장애 같은 정서 장애도 많아지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거리와 장소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할까요? 거리에서 사람들끼리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는 일도 많은데, 그건 벤치 디자인과 배치만으로도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사회, 경제, 문화, 환경, 기술 같은 모든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인 역량도 자랄 수 없어요. 결국 다 일맥상통하는데, 필요한 디자인을 하려면 컵을 볼 게 아니라 그 컵으로 마실 사람을 봐야 하잖아요. 이 사람은 왼손잡이고, 키가 작고, 시력이 약하다는 걸 알면 컵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답이 나오는 것처럼요. 분야는 물론 무궁무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조형이나 색감을 볼 뿐, 60대 이상이 되면 시세포가 어떻게 변하니 고령자 아파트에서는 색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는 사실 요원하죠. 그래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것 같아요. 그때 어떤 정보를 접하느냐에 달린 문제니까요.
이 질문이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공공재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런 열린 자세가 있느냐를 묻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공디자인의 가장 빠른 발전은 디자인 안에서 우리끼리 디자인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것보다, 다른 영역과 얼마나 이질 접합을 시켜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기술 영역, 사회 영역과 붙여 보는 거죠. 그 부분이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하고, 공공디자이너의 창의성은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회, 경제, 문화, 환경, 기술과 결합한 다음 디자인이 필요하게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고민하면,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로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게 이른바 창의적 디자인이 아닐까요.
사실 이 질문을 보고 제가 배웠어요.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나, 요즘 좀 소원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답을 하자면, 저는 사회적 약자라기보다 다양해진 세대와 계층이 너무 분절되어 있는 현상을 디자인이 조금 보완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그렇게 분절된 문제들이 디자인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정말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해결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줄일 수는 있겠죠. 범죄 예방이 그렇듯이 해결은 못 해도 줄일 수는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자부심이 생겨요.
제가 2019년에 공공디자인 실험실을 만들어 지금까지 스물네 개쯤 진행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디자인이 예쁘고 다 좋은데, 사람들은 "예쁘다" 하고 끝나잖아요. 그래서 그 디자인으로 무엇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정량으로 보여 주고, 그것이 정책으로 쓰이게 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 놓으니 사람들 반응이 달라져요. 예쁘다는 데서 멈추던 흥미가, "이 컵 덕분에 사람들의 수분 섭취량이 늘어 건강이 좋아졌다는 걸 아세요?" 하면 달라지는 거죠.
실제로 뉴욕의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에는 일곱 가지 지침이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항목이 '정문에서 계단까지를 25피트 안에 두라'는 겁니다. 7.62미터죠. 실증을 해 보니, 25피트 안에 있는 계단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할 여지 없이 이용할 확률이 아주 높았던 모양이에요. 거기에 빨간 라인까지 그으면 계단 사용률이 30% 이상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잰 다음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를 적용하고 1년 뒤에 다시 재 보면, 줄지는 않더라도 늘지 않을 수 있겠죠. 실제로 뉴욕에서는 평균 250g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디자인을 검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건 아주 매력 있는 일이에요. 그전까지는 예쁘다, 재미있다에서 끝날 일들이 산업공학이나 경영, 정책 같은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공공디자인에서도 앞으로 이른바 컨설팅 영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실무에서 매일 도면을 그리고 만드는 일도 좋지만, 컨설팅이나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기획, CSR처럼 민간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결합하는 일처럼 재미있는 방향으로 공공디자이너의 영역이 넓어지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워요.
그런 컨설팅을 하려면 얼마나 많이 알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깊게 아느냐입니다. 공공디자인은 자기 분야를 얼마나 접합시키느냐의 문제예요. 원우 여러분도 이미 좋은 영역에서 깊이 있게 일하고 계시잖아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고립감이나 두려운 마음을 안고 찾는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이 주는 재방문율이나 이미지 개선율 같은 다양한 지표를 가지고 공간을 만들어 제안하고 실험해 보는 일은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주는 공간도 마찬가지고요. 이왕 하실 거면 그런 걸 논문 주제로 연구해 보세요. 인터뷰가 논문 세미나가 되어 버렸네요.
AI 시대의 공공디자인
최근 AI와 디자인의 융합에 대해서도 연구와 활동을 이어 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I가 공공디자인의 과정과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AI 시대에도 공공디자이너가 반드시 가져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러분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두 가지 경험을 해 봤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디자인 생활과, 그 이후의 생활을 모두 해 봤어요. 여러분은 처음부터 인터넷이 있었죠. KTX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사회생활도 해 봤습니다. KTX가 없을 때는 대구 출장이면 무조건 1박 2일이었어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아침에 외근을 나가면 연락이 안 되니까, 밖에서 일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들어와도 괜찮았죠. 요즘은 KTX로 대구에 다녀와서 다시 회사에 복귀해 일하잖아요. 이게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이야기는 우리끼리 따로 해 보고요. 어쨌든 새로운 도구가 생기면 그 도구가 주는 혜택은 큽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교수님이 어떤 개론서의 한 페이지를 복사해 오라는 게 숙제였어요. 도서관에 가면 이미 누가 빌려 가서 책이 없고, 친구들한테 수소문해서 한 장 복사해 가려고 난리법석을 치던 시대였죠. 얼마나 비효율적이에요. 대학교 4학년 때 전산학 수업에서 가장 배점이 큰 기말 과제는 교수님께 이메일 보내기였습니다. 골뱅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여러분에게는 당연하겠지만 그때는 완전히 없던 개념이었고, 외계어처럼 보였죠.
그때 건축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더라고요. 한쪽은 "사람이 직접 긋지 않고 컴퓨터가 그은 선이 무슨 선이냐", "직접 쓰지 않고 인터넷에서 출력한 게 어떻게 네 것이냐" 하고 비난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믿기지 않겠죠. 그런 도구가 있었기에 우리는 부가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더 성취하게 됐으니까요. 지구 반대편의 그림을 하이퍼링크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복사 한 장 해 가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때 인터넷을 보며 느낀 건, 새로운 기술이 지금의 기능을 대신한다고 무조건 배척하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이 더 발전될 수 있을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 "인터넷을 보여 줄게" 하고 화면을 띄워서,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있는 거라고 설명합니다. 그걸 본 몇몇 사람은 "그거 텔레비전으로 하면 되잖아" 하고 깎아내려요. 자기가 가진 과거의 관점으로만 분석하니 개선의 여지가 없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구 반대편의 사진을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물건을 지구 반대편에 팔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마존이에요. 같은 하이퍼링크를 보고 어떤 자세가 진취적인지는 당연히 후자죠.
그런데 똑같은 일이 지금 또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걸 경험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제가 AI에 이렇게 매달리는 거예요. 하이퍼링크가 그랬듯 AI도 아주 큰 개념입니다. 그 자체가 답을 주지는 않아요. 하이퍼링크 위에 여러 웹사이트가 생기고 아마존 같은 것이 발전했듯이요. 지금은 AI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인공지능은 여러 웹사이트의 정보를 추론해 그럴싸하게 하나로 묶어 낸,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기술입니다. 다만 그 결과를 하나의 인격체가 만든 것처럼 내놓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대단해 보이는 거죠.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그거 웹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되잖아"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옛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하이퍼링크를 보고 지구 반대편에 물건을 팔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공공디자인의 관점에서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AI의 입력창에 무엇이든 치면 답이 나오고, VS Code 같은 도구에서 책을 써 달라고 하면 써 주는 기술에 놀랄 게 아니라, 하이퍼링크로 쇼핑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공공 영역에 이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지를 끊임없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는 계속 발전할 겁니다. 지금이 인터넷으로 치면 모뎀이 처음 나왔을 때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어마어마한 기술 발전이 계속 찾아올 텐데, 디자이너가 이것을 어떤 방향으로 전략적으로 응용할지, 어려운 말로 하면 도메인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도메인을 만들지 않고 AI 기술에만 빠져서, 과거에 하던 일을 대신 시키는 데만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책을 대신 써 줘, 그림을 대신 만들어 줘, 이것만 반복하는 거죠. 옛날 인터넷 때 그런 사람들은 금방 무너졌습니다. 새 도구는 새 가치를 위해 써야 해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세미나에서 논의해야 할 것은 "옛날 일이 AI로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AI로 공공 영역에서 이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들입니다. 아마존이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듯, 그들은 하이퍼링크라는 개념을 자기만의 가치로 도메인화했잖아요. AI라는 기술을 공공의 영역에서 얼마나 도메인화하느냐, 그게 지금 우리의 숙제이고, 우리 전공에서 AI 수업을 한다면 바로 이런 걸 해야 합니다. 기술은 돈만 조금 내면 누구나 쓸 수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AI에 관심을 갖는 건 잘해서가 아닙니다. 잠시라도 놓으면 안 되고, 과거 지향적으로 AI를 쓰는 게 아니라 새로 찾아온 기회를 실시간으로 계속 접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잘 몰라도 열어서 써 보고, 이걸로 무엇을 해 볼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고, 실무에도 자꾸 적용해 보는 겁니다. 여러분도 같이 써 보세요. 이건 엄청난 기회입니다.
공공디자인을 공부하는 원우들에게
교수님께서 공공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공공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저희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으신가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야기가 다 그 안에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누구를 가르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답은 없고, 내가 아는 답은 내가 가진 변수 안에서의 답일 뿐이니까요.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함부로 "이게 맞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논문을 쓰는 원우들이 그래서 저를 어려워하기도 해요. "좋았어. 그런데 그게 과연 논문 심사를 통과할까?" 하는 게 제 나쁜 버릇이라던데, 제 뜻은 그게 아니라 '그게 과연 정답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 놓는 것이 그 사람의 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저도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가르친다기보다 제가 먼저 알게 된 것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게 제 일 같아요. 지식을 전하는 게 아니라, "공공디자인으로 이걸 해 봐야지", "실험실을 해 봐야지", "AI를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교육이 할 일입니다. 이게 맞으니 이걸 하라는 건 있을 수 없고, 그건 오히려 그 사람의 역량을 가두는 일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원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에서도 나왔듯이 관심이 무엇이냐, 그걸 얼마나 깊게 보느냐가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겁니다. 그런 열정이나 에너지가 없으면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이에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쉬는 평범한 삶과 달리, 디자이너는 어떤 면에서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약간 편집증적으로 관심을 두는 게 하나 있어야 해요. 미쳐 있는 게 하나 있어야 합니다. 미쳐 있다는 증거는 이런 거예요. 밤에 다 씻고 쉬어야 하는데 자꾸 그걸 하고, 일요일에 쉬다가도 한두 시간을 빼서 그걸 하고, 아침에 잠깐 틈이 나도 늘 스마트폰으로 그걸 붙들고 있는 거죠. 그게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달라요. 영화일 수도 있고 공공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있으면 연구든 뭐든 다 됩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논문 쓰는 일은 제가 보기에 가장 쉬운 일 가운데 하나예요. 중요한 건 얼마나 몰입하는 관심사가 있느냐, 그림 그리는 디자인 말고 어떤 영역과 이어져 있느냐입니다. 그런 분들은 연구도 쉽고 재미있게 해요. 우리 전공에서 나온 재미있는 논문을 보면 다 어딘가에 미친 사람들이 쓴 논문입니다. 멘탈케어에 빠진 사람, 그림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파고드는 사람, 박사과정 중에도 공공 가치로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사람, 참여 디자인과 거버넌스에 몰두하는 사람이 각자 하나씩 붙들고 있어요.
그래서 첫째는 의도적으로 데드 포인트를 넘어서라는 겁니다. 달리기를 할 때 숨이 너무 차고 식은땀이 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조금 넘기면 혈관이 다 팽창하면서 갑자기 수월해지잖아요. 그걸 데드 포인트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80%의 사람들이 그 데드 포인트를 넘지 못합니다. 힘들고 귀찮고 잘 안 되니까 포기하는 거죠. 어떤 영역이든 그 데드 포인트를 넘는 사람이 최소한 우리 전공에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다음은 그것을 사회 의제, 디자인 의제와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불행하고 자살도 많이 한다면, 우리가 디자인으로 그런 사람들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조형물이나 벤치, 가로등 조명, 책상 같은 데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과 연결하는 겁니다. 그게 딱 맞물리면 연구도, 실무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가치도 함께 올라갑니다. 운이 좋으면 책을 내서 이름이 알려지고, 흔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로 한 발을 내딛게 되는 거죠.
그 단계까지 가 봐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역량은 다 있어요. 그런데 대다수가 그걸 하지 않습니다. 몰입해도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당장 손에 잡히고 돈이 되는 일을 하게 되거든요. 90%는 그런 일을 하더라도 10%의 몰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53년을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잘되고, 행복해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는 분들을 보면 다 그게 있더라고요.
대학원에, 그것도 공공디자인 같은 드문 전공에 오신 원우 여러분은 그냥 오신 게 아니잖아요. 다들 희망이 있어서 오셨을 텐데, 여기서 그 희망을 싹틔워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는 만날 시간도, 이런 이야기를 전할 시간도 많지 않아서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절대 희망을 잃지 마세요. 앞길이 창창하고, 디자인으로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려면 여기 있는 미친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몰입하세요. 그러면 80%의 제너럴리스트보다 더 나은 삶을,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하면서 제 생각도 정리가 되고, 나는 그렇게 살아왔나 반성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