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이 공공에게, 공공이 경관에게
2021년 6월 코로나의 여파가 있던 시절, 신촌에서 의미있는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국내 최초로 경관과 공공디자인을 함께 논의하는 연합세미나’라는 이름으로 보도자료도 나갔었던 행사였습니다. 한국경관학회와 더나은도시디자인포럼이 공동 기획한 의미있는 행사였는데 이후 경관+공공 집담회라는 명칭으로 건축공간연구원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등의 후원과 함께 2024년까지 운영되며 1년에 한 번씩 경관전문가들과 공공디자인 전문가들이 함께 모이는 의미있는 자리를 가졌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인 ‘경관이 공공에게, 공공이 경관에게’는 2022년 경관디자인+공공디자인 집담회의 제목이었습니다. 집담회 행사를 소개하는 내용은 늘 비슷했는데 ‘모호한 관계에 있는 두 영역의 관계 정립을 통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경관과 디자인 관련 전문가, 행정 공무원뿐만 아니라 두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였습니다. 이러한 모호한 관계라는 인식은 아직까지도 많은 실무가와 행정가들 사이에서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관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은 도시 공공 환경의 질적 향상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을 공유하면서도, 법적 근거와 관리 관점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경관법(국토교통부 소관)과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은 서로 다른 모법 체계에서 파생된 법률로서, 도시계획법에서 경관을 분리하고, 문체부에서 공공디자인을 별도로 제도화함에 따라, 동일 대상에 대해 이중 심의가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이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일 것입니다. 경관디자인, 공공디자인이 각각의 특성으로 진화나감에 따라 다루는 대상이 같지만 경관디자인을 물리적, 환경의 관리 체계로, 공공디자인을 공공가치의 구현 체계로 구분하며 나아가 양 체계 간의 관계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상호보완적 구조로 해석함으로써, ‘혼란’ 이 아닌 ‘조화’의 공공환경 디자인과 관리의 효율화적 가치도 보이고 있습니다.
경관디자인: 물리적 경치의 관리 체계
경관(景觀)의 어원은 '볼 경(景)'과 '관찰할 관(觀)'의 결합으로, 인간의 시각을 통해 인지되는 물리적 환경의 총체를 의미한다. 경관법 제2조에서 규정하는 경관이란 "자연, 인공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 등으로 이루어진 일단의 지역환경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경관법 시행령에서는 경관심의 대상을 특정사업비 이상의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건축물의 경관심의 대상을 물리적 규모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관요소별 관리계획은 공공건축물에 대해 배치, 규모, 높이, 형태, 입면, 재질, 색채, 외부공간, 옥외광고물, 야간경관 등을 가이드라인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상의 규정 방식과 가이드라인의 구성은, 경관디자인이 근본적으로 도시 환경의 시감적 환경물에 대한 관리와 조절을 그 고유 영역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관심의에서 다루는 핵심 사항은 색채, 외관 형태의 조화, 주변 경치와의 관계 등 인간의 눈에 보이는 물리적 경치의 질적 관리를 제도적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공공디자인: 공공가치의 구현 체계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디자인진흥법) 제2조 제1호는 공공디자인을 "일반 공중을 위하여 국가기관등이 조성·제작·설치·운영 또는 관리하는 공공시설물등에 대하여 공공성과 심미성 향상을 위하여 디자인하는 행위 및 그 결과물"로 정의합니다. 주목할 점은 공공디자인의 목적이 단순한 시각적 심미성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성'의 향상을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공디자인진흥법 제5조에 근거하여 수립된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에서는 공공성을 '안전, 편의, 품격, 배려'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가치는 물리적 시설물의 외관이 아닌, 해당 시설물이 공공 영역에서 수행해야 할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인데 안전은 범죄예방디자인(CPTED)과 재난 대응 등을 포괄하며, 편의는 유니버설디자인과 접근성 확보를, 품격은 지역 정체성과 문화적 수준의 향상을, 배려는 아동친화·다문화·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적 디자인을 구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법 제2조 공공디자인사업 정의인데 공공디자인사업의 범위를 "기획·조사·분석·자문·설계 및 제작·설치·관리 등"으로 규정하며 '기획·조사·분석·관리' 등의 무형적 사업 유형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공공디자인이 물리적 시설물의 조성에 그치지 않고, 그 이전 단계의 가치 기획과 전략 수립까지를 사업의 본질적 구성요소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법 제10조 공공디자인사업 시행의 원칙에서는 이러한 가치 지향적 성격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공공디자인사업의 다섯가지 기본원칙으로 첫째,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둘째, 연령, 성별, 장애 여부, 국적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셋째, 국가·지역의 역사 및 정체성을 표현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균형을 이룰 것을 각각 명시하며 넷째,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 참여 방안을 마련할 것을 마지막 다섯째는 관계 기관과 적극적 협력체계를 통하여 공공디자인을 구현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의 공공디자인은 거버넌스, 민간기업과의 CSR협력, 통합 협력의 공공디자인 실험실과 같은 공공디자인의 사업 가치를 지향하는 다양한 모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관웨어와 공공웨어: 상호보완적 관계 구조
경관디자인은 도시 공공 환경, 즉 색채, 형태, 규모, 경치와의 조화 등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하드웨어적 측면을 , 공공디자인은 그 물리적 환경이 구현해야 할 공공성, 즉 안전·편의·품격·배려라는 가치적 요소,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적 측면을 관리하는 관계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효율적일 것 입니다.
예컨대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에서, 공원의 외관 디자인과 주변 경치와의 색채적·형태적 조화는 경관심의의 영역에 관리하고 해당 공원 내 시설물의 범죄예방 설계,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에 따른 접근성 확보, 아동 안전을 위한 동선 계획, 다문화 이용자를 위한 안내 체계 등의 공공성 요소는 공공디자인심의의 영역에서 관리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물리적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심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두 관점은 상호 배타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는 도시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모델로 가능합니다.
‘경관이 공공에게, 공공이 경관에게’ 서로 도움이 되려면 경관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은 동일한 물리적 공간을 대상으로 하되, 전자는 그 공간의 시각적·물리적 환경를 관리하고, 후자는 공공 환경이 갖춰야 할 공공가치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경관법 체계가 '경(景)', 즉 눈에 보이는 경치의 질적 관리에 초점을 둔다면, 공공디자인진흥법 체계는 그 경치가 지녀야 할 안전, 편의, 품격, 배려라는 가치적 차원의 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일대상에 다른 관점의 개념적 분리는 현행 법체계에서 발생하는 심의 대상의 중첩 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사업이나 시설에 대해 경관의 관점과 공공가치의 관점을 명확히 구분하여 심의를 운영한다면, 이중 심의의 비효율을 최소화하면서도 각 법률 체계의 고유한 목적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경관이 공공에게, 공공이 경관에게’ 체계의 상호 보완적 운영은 도시 환경의 물리적 질과 공공적 가치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통합적 관리를 가능케 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관점의 분리가 실제 심의 운영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시설 유형별로 경관심의와 공공디자인심의의 관점을 사전에 분류하는 체크리스트의 개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조례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관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은 우리 도시환경을 다루는 가장 디테일하고 날카로운 도구입니다. 하지만 통합되지 못한 환경 속에서 태동된 두 영역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치고 이제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라나는 청년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관과 공공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담회를 통해 가능성을 놓지 않고 조화와 협력의 시작을 해왔듯이 경관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이 늘 서로에게 얘기해주고 보완해주는 좋은 친구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