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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ULA / PUBLIC DESIGN02 · 정책·제도·공공서비스
집필·연구초안 / 013

정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디자인은 왜 그것을 닮았는가

— 정책의 정의와 유형, 그리고 디자인과의 구조적 유사성

들어가며

공공디자인 실무의 언어는 오랫동안 '조성'과 '정비'에 정박해 왔다. 그러나 공공디자인이 다루는 대상—무단투기, 보행 안전, 접근성, 범죄 두려움—은 어느 것도 물리적 조형만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이 대상들은 본래 정책의 대상이다. 따라서 공공디자인이 자신의 위치를 재정의하려면, 먼저 정책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확히 다룰 필요가 있다.

본고는 정책의 정의와 유형을 정리하고, 정책과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유사성을 확인한 뒤, 그 유사성이 은폐하는 차이를 함께 검토한다.

1. 정책의 정의: 단일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책(policy)은 학문적으로 합의된 단일 정의를 갖지 않는다. 정의의 스펙트럼은 대체로 세 계열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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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최소주의적 정의. 토머스 다이(Thomas Dye)는 정책을 '정부가 하기로 선택한 것과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 정의의 핵심은 의무에 대한 미수행 또한 역시 정책이라는 명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정 또한 자원 배분과 가치 배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공공디자인 영역에서 특정 지역이 지속적으로 사업 대상에서 배제되는 현상 역시 이 관점에서는 하나의 정책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둘째, 행위지향적 정의.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은 정책을 '문제를 다루기 위해 행위자 또는 행위자 집단이 따르는 의도적 행동 노선'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우발적 조치와 구별되는 '의도성'과 '경로의 지속성'이다. 일회성 시범사업이 정책으로 승격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 지점에 있다.

셋째, 과정지향적 정의. 해럴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이 1951년 정책학(policy sciences)을 제창하면서 제시한 관점으로, 정책을 완결된 산출물이 아니라 지식이 생성·순환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정책과정에 관한 지식'과 '정책과정에 필요한 지식'의 구분이 여기서 비롯한다.

세 계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최소한 다음 세 요소의 결합으로 성립한다.

구성요소 내용 결손 시 나타나는 현상
정책목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상태 사업은 집행되나 성과 판단 불가
정책수단 목표 달성을 위한 개입 도구 선언적 계획, 집행력 부재
정책대상 개입이 작용하는 집단·공간 수혜와 부담의 귀착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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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 사항. 정의의 광협은 분석의 정밀도와 상충한다. 광의의 정의는 모든 행정행위를 정책으로 환원하여 개념의 변별력을 약화시키고, 협의의 정의는 비공식적 관행이나 관료제 내부의 재량적 결정을 분석 대상에서 배제한다. 어느 정의를 채택하든 그 대가를 함께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정책의 유형: 세 개의 분류축

정책 유형론은 목적에 따라 상이한 축으로 구성된다. 실무에서 유용한 축은 다음 세 가지다.

2-1. 산출 효과 기준 — 로위(Theodore Lowi)의 유형론

로위는 1964년 논문에서 분배정책·규제정책·재분배정책을 구분하고, 이후 구성정책을 추가하여 4유형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의 핵심 명제는 '정책이 정치를 결정한다(policy determines politics)'는 역전된 인과 가설이다. 즉 정책 유형이 달라지면 그것을 둘러싼 갈등의 구조와 행위자 연합의 형태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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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성격 정치적 특성 공공디자인 대응 사례
분배정책 편익의 선별적 배분 낮은 갈등, 상호불간섭적 나눠먹기 지자체 공공디자인 사업 예산 배분
규제정책 행위의 제약과 의무 부과 피규제집단과의 직접 충돌 옥외광고물 규정, 심의 기준
재분배정책 계층 간 자원 이전 이념적 대립, 고강도 갈등 취약지역 우선 투자, 배리어프리 의무화
구성정책 제도·기구·규칙의 설계 저관심·고파급, 전문가 주도 공공디자인위원회, 진흥계획 체계

여기서 주목할 진단이 하나 있다. 한국의 공공디자인 사업은 대체로 분배정책의 형식으로 설계되어 왔으나, 그것이 실제로 성과를 내는 국면은 규제정책과 구성정책의 영역이다. 형식과 실효의 이 불일치가 공공디자인의 정책적 저평가를 만들어 온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2-2. 정책수단 기준 — 후드(Christopher Hood)의 NATO 모형

후드는 정부가 보유한 자원을 네 가지로 유형화하였다. 정보(Nodality), 권위(Authority), 재정(Treasure), 조직(Organization)이 그것이다. 이와 유사한 계열로 베둥(Evert Vedung)은 정책수단을 규제(sticks), 경제적 유인(carrots), 정보·설득(sermons)의 세 범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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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은 공공디자인의 위치를 정밀하게 지시한다. 공공디자인은 전통적으로 재정과 조직에 의존해 왔다. 예산을 편성하고 용역을 발주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고유한 강점은 정보와 권위자원에 있다. 환경 자체가 규범을 전달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즉 문자화되지 않은 규칙을 공간에 기입하는 능력—은 다른 정책수단이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2-3. 과정 기준 — 정책과정 단계 모형

의제설정 → 정책형성 → 정책채택 → 정책집행 → 정책평가의 5단계 모형은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서술 틀이다. 다만 이 모형에 대해서는 폴 사바티어(Paul Sabatier) 등이 제기한 비판, 즉 단계 모형은 서술적 편의를 제공할 뿐 인과적 설명력을 갖지 못하며 실제 정책과정의 비선형성을 왜곡한다는 지적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공디자인의 관여 지점을 이 축에 대입하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현행 공공디자인 실무는 압도적으로 집행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목표와 수단이 이미 확정된 뒤 투입되는 것이다. 반면 디자인의 방법론적 강점이 발휘되는 국면은 의제설정과 정책형성, 곧 문제가 아직 정의되지 않은 단계다.

3. 정책과 디자인의 구조적 유사성

정책과 디자인의 유사성은 비유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다섯 개의 축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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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목적지향적 인공물의 창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인공의 과학(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 1969)』에서 설계를 '현존 상황을 선호되는 상황으로 변경하기 위한 행동 방안을 고안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이 정의가 공학·의학·경영·정책 전반에 적용된다고 명시하였다. 사이먼의 정의에서 정책은 이미 하나의 설계 활동이다. 정책 또한 자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며, 따라서 잘 만들어질 수도 잘못 만들어질 수도 있다.

② 문제 정의의 우선성과 악성 문제. 리텔과 웨버(Rittel & Webber)가 1973년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s)' 개념을 제출한 지면이 도시계획과 사회정책 영역이었다는 사실은 반복해서 강조될 가치가 있다. 이 개념은 정책학에서 발원하여 이후 리처드 부캐넌(Richard Buchanan, 1992)에 의해 디자인 담론으로 이식되었다. 즉 오늘날 디자인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문제 정의 능력'의 개념적 원산지는 정책 영역이다. 정책과 디자인은 동일한 문제 인식론을 공유한다.

③ 대상집단과 사용자의 동일함. 정책의 정책대상집단과 디자인의 사용자는 동일하다. 양자 모두 개입의 효과가 최종적으로 나타나고 체험되는 지점이며, 양자 모두 개입에 순응·회피·저항으로 반응하는 지점이다.

④ 제약 조건 하의 대안 탐색과 반복. 정책도 디자인도 최적해가 아니라 만족해를 탐색한다. 예산·법령·시간·정치적 수용성이라는 제약 조건 아래 복수의 대안을 생성하고 비교한다. 디자인의 프로토타이핑은 정책의 시범사업·규제 샌드박스·정책실험과 방법론적으로 동형이다.

⑤ 산출의 가시성과 체감. 정책의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시민의 체감에서 확보된다. 그러나 다수의 정책은 문서와 통계로 존재할 뿐 감각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디자인은 정책을 감각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직접적인 수단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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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사성이 은폐하는 것: 유추의 한계

구조적 유사성을 확인했다고 하여 정책과 디자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다음의 차이는 유지된다.

첫째, 강제력과 정당성의 문제. 정책은 공권력·예산·법적 책임을 수반한다.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거부는 소비자의 선택이지만, 정책에 대한 불응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이 비대칭은 정책 설계자에게 디자이너와 다른 수준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책임성을 요구한다.

둘째, 정치의 소거 위험.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의 정책 영역 적용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옹호 측—크리스티안 바손(Christian Bason)이 편집한 『Design for Policy(2014)』 등—은 디자인이 관료제의 경직된 문제 인식을 해체하고 시민 관점을 복원한다고 본다. 반면 비판 측은 디자인 사고가 이해관계의 충돌과 권력관계를 '워크숍으로 해소 가능한 소통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정책의 본질인 정치성을 탈각시킨다고 지적한다. 루시 킴벨(Lucy Kimbell) 등이 정부 내 디자인 실천을 연구하며 제기한 문제의식도 이 계열에 속한다. 어느 한쪽을 결론으로 채택하기보다, 디자인이 정책에 개입할 때 '누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라는 배분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편이 타당하다.

셋째, 시간 지평과 평가 체계의 차이. 디자인은 완성 시점에 평가되지만, 정책은 집행 이후 수년에 걸친 효과로 평가된다. 공공디자인 사업이 준공 사진으로 종결되는 관행은 디자인의 평가 체계를 정책 영역에 무비판적으로 이식한 결과다.

5. PbD의 자리

이상의 검토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디자인이 정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수단의 목록에 디자인이 추가되고, 정책과정의 특정 국면에 디자인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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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정의 조항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동법 제2조는 공공디자인을 공공시설물등에 대하여 공공성과 심미성 향상을 위하여 디자인하는 행위 및 그 결과물로 규정한다. 법적 정의 자체가 '시설물'과 '결과물'에 정박해 있는 것이다. 이 규정은 공공디자인을 정책의 집행 수단으로 한정하며, 문제 정의와 정책 형성의 국면을 법문에서 배제한다. '만드는 디자인'에서 '푸는 디자인'으로의 전환이 개념의 문제인 동시에 제도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LICY by DESIGN이 제안하는 네 명제—동시성, 매개성, 과정성, 체감성—는 각각 앞서 검토한 정책론의 결손 지점에 대응한다. 동시성은 단계 모형의 선형성을, 매개성은 수단 유형론의 재정·조직 편중을, 과정성은 집행 단계 편중을, 체감성은 정책 산출의 비가시성을 겨냥한다. 유사성의 확인은 출발점이며, 차이의 정밀한 인식이 그다음 과제다.

※ 본고는 개념적 정리를 목적으로 하며, 국내 공공디자인 사업의 예산 규모·유형별 비중 등 계량 지표는 별도의 실증 자료 확인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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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전체 목차

아홉 개의 주제,
하나로 이어지는 질문.

01공공디자인의 생각1202정책을 실현하는 방법1803일상을 바꾸는 실험1104안전과 회복의 조건1105모두를 위한 디자인806지속가능한 공공의 삶1007도시를 다시 읽다1108바다와 수변의 미래1209배우고 기록하고 확장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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